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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오직 그의 앞에서 키스를 나눌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을 때만 손을 잡고 대화를 하고 같이 걸어가며 사랑을 나눌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게, 우리 또한 우리가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오직 신만이 이를 알도록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위해, 서로가 소중해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나눈 사랑을 들킬까 겁나는 게 아니야, 이러한 방식이 우리의 최선이기 때문이지. 결국 지고 마는 사랑은 남은 게 없이 모두에게 잊혀지는 게, 바로 그게 우리의 사랑이기 때문이야. 유리는 잡고 있던 델리코의 손에 힘을 주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히 서로 가족만큼 소중한 사이인 게 아니라, 항상 곁에 있고 미래를 함께 하고픈 사람이란 걸 말이다. 유리는 지금처럼 델리코와 골목길을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 에르가스틀룸에서도 황혼종들은 좁은 골목길이나 빛이 들지 않는 거리 위주로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이곳이 다른 지역보다 떨어지는 구역이라 해도 전부 같은 취급을 받는 건 아니었다. 밝은 면이 있는 곳에 어두운 면은 어디든 있다. 이 골목길은 동네에서 어두운 면이었다. 사람들은 본래 우위에 서 타인보다 자신이 나은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자 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차별은 존재하며, 자신들에게 두려운 존재일 수록 족쇄를 채워 목줄을 쥐려 한다. 그렇게 목줄을 한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길이 바로 유리와 델리코가 걷는 길이었다. 노멀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황혼종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전부 죽이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그런데도 노멀에게 족쇄의 줄을 쥐어준 건, 그들 전부 착한 성격을 가진 탓이 아니었다. 황혼종들은 자신들의 취급에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을 죽이는 걸로 해결될 리가 없으니까. 뭘 해도 소용 없을 것이란 니콜라스의 말을 떠올린다. 유리는 이에 동의했다. 우리가 무얼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그들을 전부 죽여도, 약을 계속 먹어도, 황혼종들은 죽고, 또 죽고, 그저 죽는다. 마치 죽기 위한 존재인 것처럼. 그렇기에 델리코도 유리도, 같이 다니는 날이든 따로 다니는 날이든 어두운 골목길만을 골라 걸어다녔다. 황혼종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는 이상, 노멀들과 같은 길은 걸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밑이었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마저도 그들보다 밑에 있을 것이다. 숨만 쉬어도 죽을 수 있는 존재들이, 사랑을 나누는 걸 곱게 볼 노멀은 거의 없다. D등급으로 살면서 평범하게 가정을 이룰 줄 알았던 옆집 사람들도 결국 비명으로 인생을 끝냈다. 유리는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꽃을 두었다. 상냥한 부모에 사이 좋은 자매였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살려달라는 말을 들어도 유리는 그들에게 갈 수 없었다.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황혼종은 노멀을 건들 수 없고, 유리의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으나 누구든 의뢰하지 않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청부살인에 있어 가장 마지막에 있는 조약이었다. 노멀은 의뢰가 있을 경우에만 움직일 것. 그 날은 끔찍한 비명을 들으며 잠에 들었다. 델리코를 보러 갈 수도 없었다. 황혼종이 죽는 건 일상이다. 특별하지도, 문제 될 것도 없는 나날들. 유리는 그 집을 지날 때마다 델리코와 가정을 이뤄도 죽는 결말을 상상한다. 끔찍한 상상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제 손에 느껴지는 미세한 압박에 델리코는 유리를 바라본다.

 

 

“ 왜 그래? ”

 

 

걱정을 담아 바라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유리는 웃어보인다. 목소리에 오로지 감정을 전부 담지 못하는 부분도, 그저 손에 힘을 주었을 뿐인데 제 행동에 쉽게 흔들리는 감정마저도 델리코의 성격이니 유리는 그게 익숙했다. 아무것도 아냐, 하고 고개를 저으면 델리코는 아무 말 없이 웃어보인다. 유리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대가를 가지고 있지만, 대가가 아니더라도 델리코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와 결혼하는 상상을 했어, 하얀 색의 드레스를 입고, 너는 평소보다 밝은 정장에, 우리를 보러온 관객들은 아주 적어. 우리는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사겠지. 아니면 내 집에 네가 오거나. 나는 어느 쪽이든 좋아. 부부라는 관계로 같이 사는 날이 온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없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결혼한 다음 날에 죽어. 누군지 모르겠어. 술 취한 노멀인지, 우리 결혼 소식을 들은 노멀인지. 먼로 패밀리의 적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계속 결혼하고, 사랑을 나누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들은 슬픔을 공유하였으나 같은 슬픔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유리의 슬픔은 오직 유리만 아는 것으로, 델리코에게 자신의 슬픔을 얹을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죽는 상상은, 특히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죽는 상상은 그만두는 게 나았다. 유리는 시선을 하늘에 두었다. 오늘은 유독히 햇빛이 쨍한 날인 탓에 어두운 골목길에도 강렬한 햇빛이 들어온다. 그 햇빛에 델리코의 밝은 머리칼이 평소보다 더 밝아보이는 날이면 유리는 그 빛을 받는 게 오로지 자신 뿐이란 사실에 들뜨고 만다. 자신의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황혼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일상이며, 유리에게 있어 특별한 날이었다. 유리는 델리코의 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마치 자신을 보란 듯한 행동에 델리코는 고개를 돌려 유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본다는 걸 알고 나서야 유리는 델리코와 잡은 손을 놓고 그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겼다. 서로의 숨이 맞닿을 때쯤, 델리코의 손도 자연스레 유리의 허리에 얹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일이라 말할 것도 없었다. 햇빛이 아무리 강렬해도 둘이 걷는 골목은 어둠이며, 신만이 볼 수 있는 길이다.

 

 

 

 

짧게 입을 맞춘 시간이 지나 유리는 발걸음을 뒤로 한다. 그들은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만, 처음으로 입을 맞춘 것도 아니었다. 델리코는 이럴 때면 사랑에 빠진 날처럼 약한 떨림을 느꼈다. 유리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 그보다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깨닫게 되었을 때, 흑색의 머리칼이 흩날리고 마주치는 흑색의 눈에 끌려가듯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얹는 게 전부였다. 상대는 당연히 이해 못 한 표정이었으나 희미한 웃음이, 꽃에 나비가 앉듯 그녀의 얼굴에 살포시 얹어진다. 델리코는 그 웃음 하나면 충분했다. 그 순간이 행복이고, 빛이고, 미래였다. 온갖 달콤한 말과 사랑스런 나날, 서로에게 행복이 되는 순간들마저 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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