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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영부영거리다 놓치는 건 라비잖아요? ”

“ 그거, 무슨 뜻이야? ”

“ 라비는 엄청나게 가벼운 사람이라 몰랐겠지만~ 유하씨, 의외로 인기 있으니까요. ”

“ 뭐…? ”

 

 

아, 아니지. 나도 알고 있었어! 알렌의 말에 곧장 답을 못하던 라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며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자신도 유하의 인기에 대해 몰랐을 일이었다. 눈치가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유하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고, 무엇보다 라비는 자신이 제법 그녀에게 치근덕대는 사람들을 잘 막았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유하가 교단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라비와 보냈고, 이는 유하가 자신을 찾지 않아도 라비가 그녀를 찾아다니며 그녀의 시간을 자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독점이라 말해도, 우리는 서로 좋아한다고! 아무도 묻지 않았을 질문에 라비는 종종 속으로 대답했다. 아무리 서로 좋아해도 엑소시스트가 연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은 검은 교단 내에서, 중립을 유지해야하는 북맨이었다. 교단에 소중한 사람이 생긴 탓에 이미 중립을 유지하기 어려워 죽겠는데, 거기에 연애까지 하라고? 판다, 아니, 영감이 어떤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볼지 일부러 상상하지 않아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보고 있는 게 전부였다. 사귀자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제일 애태우는 건 나인데, 다른 녀석들이 추근대는 꼴까지 봐야 한다니… 어쨌든, 임무가 끝나면 곧장 그녀를 반기는 사람이 앞길을 막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건 아니었으나 알렌이나 칸다, 리나리처럼 과학반에도, 파인더들 사이에도 유하에게 호감을 품은 사람은 확실하게 있었다. 솔직히 무리도 아니지, 길어지는 전쟁 중에도 사랑이 꽃 피우는 걸 라비는 자주 봤었다. 그때마다 자신도 연애정도야 할 수 있다며 장담했고, 그 어떤 싸움보다 길어지는 지금 상황에 오래 지낸 동료를 연애적인 감정으로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리나리에 비해 유하가 좀 쌀쌀맞긴 해도 처음에만 그럴 뿐 친해지면 웃는 얼굴과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는 착한 마음씨를 모르고 넘어가는 건 힘든 일이라고. 라비의 이어지는 투정에 알렌은 지겹다는 얼굴로 대충 대답하고 있었다. 알렌이 느끼기에도 유하는 교단에 처음 온 자신을 크게 반기지도 않았고, 리나리가 말해주기 직전까지 자기소개 또한 전혀 해주지 않아 오히려 대놓고 적의를 보여주는 칸다가 편할 지경이었다. 어떤 감정이라도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에 맞춰 대응하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그에 비해 유하는 정말 어떤 감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이 좋은지, 싫은지, 어쩌면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알렌은 유하에 대해 그 무엇도 알기 어려웠고, 그녀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게 바로 라비를 좋아한다는 감정이었다.

 

 

“ 그도 그럴 게, 너무 눈에 띈단 말이죠. ”

“ 뭐가? ”

“ 유하씨가 라비를 좋아한다는 걸요. ”

“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

“ 그런가요? ”

 

 

라비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알렌은 곧장 단조로운 웃음을 지으며 관심 없다는 티를 내었다. 처음 알게 된 감정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 보통의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알 정도로 티내지 않겠지만, 유하는 이를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라비를 향해 보이는 수줍은 웃음, 매일 따라다니는 시선, 임무를 나가면 라비를 먼저 챙겼고, 혼자 나갔다오면 라비를 먼저 찾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에 유난을 떤다고 느낄 법도 했으나 유하의 지금 모습은 전부 라비가 유하에게 먼저 했던 행동들이었다. 유하의 손이 닿으면 수줍게 웃어보이는 라비라거나 유하가 자주 있는 장소를 찾으며 매일 그녀를 따라다니는 라비라거나 전부 알렌이 교단에 들어오기 직전의 모습이라 본 적은 없었지만, 크게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연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알렌은 그렇게 정의를 내렸지만 그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얘기하는 라비 모습에 이미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고 말해봤자 알렌은 그닥 관심 없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그들의 연애에 관심을 둔 건, 유하에게 고백하는 파인더의 모습을 목격한 게 알렌인 탓이었다. 바로 무시할 생각이었으나 어쩐지 라비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렇다고 곧장 얘기할 생각도 들지 않아 리나리를 찾아가자 듣게 된 대답은 그거라면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매달 있는 일이니까. 하고…

 

 

‘ 매달이요…? ’

‘ 응, 벌써 그렇게 됐나? 16일쯤에 매번 유하한테 고백하거든. 아마, 10번은 넘게 차였을거야. ’

‘ 둘이 무슨 사이인데요? ’

‘ 유하가 그 파인더를 구해준 걸로 아는데… 나도 정확히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유하는 라비를 좋아하니까, 곤란한 모양이야. ’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받는 고백을 매번 거절하는 것도 힘든 일이잖아. 리나리의 걱정이 담겼으나 무겁지 않은 말에 알렌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연애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않다가도 라비를 좋아하는 유하의 모습을 알고도 고백하는 파인더에 대해 잠시 대단한 감정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이후로 더이상 신경 쓰지 않았는데, 최근 라비도 파인더의 존재가 크게 신경쓰이는 모양인지 대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부분의 투정은 알렌에게로 왔으니 신경을 끄려 해도 라비의 목소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차라리 둘이 빨리 사귀든, 파인더에게 으름장을 놓든 해결했으면 하는 건 분명 알렌 뿐만이 아닐 일이었다. 라비라고 마음 편할 일은 아니었다. 라비가 매번 그녀의 곁에 머무는데도 아주 잠깐 떨어진 사이를 노리거나 유하의 임무에 같이 갈 기회만 노리니… 유하가 매번 거절한다는데, 그럼 괜찮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만약 그의 끈기에 넘어간다면? 유하가 자신을 좋아하는 게 라비의 착각이라면? 나혼자만 이렇게 애태우는 거라면… 부정적인 생각도 이어져 얼굴을 핀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다행스런 일인지 라비의 우울한 얼굴은 유하가 그를 엄청 신경쓰는 계기가 되고, 이는 의외로 또다른 봄바람을 가져올 기회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민에 빠져있는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유하가 아니었다. 게다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유독 라비와 눈 마주치는 일이 줄어든 것 같으니까. 유하에게 있어서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결국 먼저 나선 건 유하였다. 코무이에게 먼저 찾아가 라비의 다음 임무에 동행을 요청했고, 이번 임무에 두 사람을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어 코무이도 곧장 두 사람을 불러냈다. 유하가 나선 탓에 그 파인더도 나설 요량이었으나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파인더를 제지한 건 알렌이었다. 물론 유하나 라비는 모를 일이지만. 두 사람의 데이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라며 교단 사람들을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

 

 

 

 

“ 라비, 여기 벚꽃이 엄청 폈대. ”

 

 

 

도착한 마을은 꽤 조용한 편이었다. 마차를 타며 들었던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꽃의 마을이라 축제가 곧 열린다는데, 확연히 보기에도 마을 곳곳에 놓인 꽃다발과 화분, 평화롭게 노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 화관이 올려져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이라도, AKMA가 나타나면 금방 아수라장이 되겠지.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엑소시스트가 없는 마을에 나타나는 상황보다 차라리 지금 나타나는 게 나을텐데.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유하는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반기지 않을 생각이라도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자신들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임무를 시작한지 첫 날이고, 아름다운 마을에 부정적인 생각만으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꽃이 잔뜩이잖아. 자신에게 꽃을 선물해주었던 날과 꽃밭을 보러 자신을 이끌던 라비를 떠올렸다. 이제는 자신이 라비의 손을 이끌고 꽃을 보러 갈 차례인 것만 같았다. 단순한 마음으로 꽃을 보러 가자는 것도 아니고… 유하는 라비를 불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웃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벚꽃, 나랑 보러 갈래? 하고 손을 내미는 유하의 모습에 라비는 또다시 고민을 하고 만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지 상상할 겨를도 없었다. 라비도 마찬가지로 마을에 도착해 보이는 꽃들을 보며 유하에게 꽃을 선물해주었던 날, 꽃밭을 보러 간 날, 그리고 네가 나에게 선물해주었던 주황색의 꽃을 떠올렸다. 누군가 라비에게 꽃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다고 답할 일이었다. 그만큼 자신에게 꽃이란, 너를 위한 기쁨이고 너에 대한 구애였으나 나중에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회만 남은 존재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왔던 자신의 행동은 틀린 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유하가 뭘 좋아하는지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는 분명 너도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라비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내민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 순간마저 떨려오는 탓에 손을 맞잡아도 그녀를 따라가는 발걸음은 늦춰졌다. 유하,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인 게 맞아? 나만 이렇게 떨리는 거 아냐? 나만 너를 보고 설레고, 나만 너를 원하고, 나만 너를 좋아하는 거 아냐? 평소와 다름없는 유하의 모습에 라비는 순간적으로 불안한 마음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너를 볼 생각에 교단을 돌아다니고, 칙칙한 색의 벽돌들이 밝아보였던 나날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노력일까, 앞서 가는 유하의 손을 붙잡고 라비는 걸음을 멈췄다. 주변에는 이미 분홍색으로 물들인 배경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파인더에게 고백을 받았던 그 날에도 너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걸어간 게 전부였을까. 이렇게 손을 잡고 너의 이름을 불러야만 상대방을 보고 눈을 마주칠 기회를 주잖아. 라비는 그 파인더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유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아니더라도 검은 교단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곁에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사람이 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달라질 게 없었다. 여전히, 너의 옆모습이 아니라 너의 뒷모습만 보고 있잖아. 그 파인더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유하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멈춘 라비를 따라 한참동안 서있었다. 어두운 그의 얼굴이, 아무래도 그의 고민이 자신의 생각보다 깊은 게 틀림없었다. 말해주면 좋을텐데, 만약 자신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고민이라면 어쩌지. 그런 생각에 제대로 된 질문 하나 하지 못했다. 내가 라비를 좋아하는 건 분명하지만… 라비가 나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지 않으니까, 비밀 공유 같은 건 함부로 하고 싶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나온 산책에도 영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비밀을 듣지 못한다면 위로라도 해주자. 유하는 입을 열어 라비의 이름을 속삭였다. 시선을 그에게 둔 채로, 그가 자신을 보고 말해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생각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라비가 고개를 들어 한마디를 내뱉었다.

 

 

“ 그 사람이랑 연애하지 마. ”

“ …네? ”

“ 어? 아니, 그게… ”

 

 

분명 생각만 했던 것 같은 말이 제 입에서 쉽게 툭 나와 당황한 건 오히려 라비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그 파인더랑 연애하지 말라고! 결국 라비는 이판사판으로 큰 목소리로 제 심정을 뱉었다. 그 순간, 맞잡았던 손이 멀어져 서로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고백 받았잖아, 그 파인더한테. 유하의 반응은 여전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 파인더? 연애? 고백? 그도 그럴게 유하에게 있어 연애상대는 오로지 라비 뿐이었고, 파인더의 고백은 거절하다 못해 이미 잊은지 오래 전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떠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뿐인가? 유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고백 받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라비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혹은 라비가 알게 되더라도 이에 대해 고민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라비는 북맨이고, 그의 연애상대가 꼭 자신일 필요 없으니까. 언제나 아쉬운 건 자신이라 생각했다. 유하가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고, 라비가 이에 대해 고민한다는 건 결국 당사자인 유하만 몰랐던 일이었다. 라비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유하를 바라본 채로 작게 한숨 쉬더니 어느새 놓쳐버린 유하의 손을 당겨 살짝 힘을 주었다. 꽃이든, 분홍색이든, 파인더까지 이제 그 모든 건 상관 없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 나랑 연애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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