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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좋아해요…! ”

“ …그래. ”

 

 

 

견우님에게 좋아한다 고백한 지 30일하고도 4일째! 오늘도 돌아오는 답은 알겠다는 짧은 답으로, 매일 같이 고백을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무래도 저의 착각이었나봅니다. 물론, 그 정도로 포기할 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 고백은 인사와 다를 바가 업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덤으로 견우님의 얼굴도 하루에 두 번은 꼭 보는 셈이죠. 짝사랑은 원래 힘든 일이라 제시카님이 말해주었으니까요. 그래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강타님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어요. 강타님은 당연히 베이 배틀로 생각한 듯 싶지만 베이 배틀과 사랑은 결국 같은 맥락인 걸요.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할 거야, 하는 강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으면 견우님도 저를 봐주시겠죠. 설, 오늘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

 

 

 

“ 네…?! 그게 정말 인사인 줄 안다고요!? ”

“ 그렇다니까~ 오늘 견우 형의 상태가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는데, 설이 누나가 평소랑 다르게 인사를 했다고 하는 거야. ”

 

 

그래서 내가 평소에 어떻게 인사하는데? 물어봤더니 좋아한다고 인사해준대. 견우 형, 완전 바보 아냐?! 흥분한 탓인지 지니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아예 방 안을 울릴 정도였다. 제시카는 물론, 지니도 설도 견우가 연애에 관심이 없을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을 넘는 반응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정말 머릿속에 베이 밖에 없는 건가? 설이라고 자신이 견우 곁에 머물면 그가 자신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시작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을 꿈꾸었다. 다크네뷸러에 들어와 드래곤이나 지니를 따라 다니며 강타의 적 마냥 행동했다고 해서 견우가 선한 사람이 아니게 될 수는 없었다. 베이로 상대방을 누르지 않았고,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장점이 있다면 올려주고, 강적을 만났다 해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 설은 자신을 거둬준 다크네뷸러에 충성을 다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하는 짓에 언제나 죄책감을 가졌고, 후회스러운 나날에서 견우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런 곳이라도 곧은 길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그에게 도움을 주면 자신도 마치 선한 사람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첫눈에 반한 감정이라는 건 다크네뷸러가 무너졌을 때 알았다. 견우가 정보를 찾을 때, 위험한 상황이 오면 도와주는 걸로 끝낼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를 도울수록 더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잠입한 스파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에게 가야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이 그에게 그 무엇도 아닐테지만,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놓쳐서는 안된다.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좋다. 정의를 쫓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더라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길. 뻔하게도 사람의 욕심은 늘어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봐주면 좋을텐데, 다크네뷸러에서 스파이 활동을 할 때부터 그를 봐왔던 사람 아니던가. 그 정도로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 내 마음이 그에게 닿지 않는 걸까. 설은 여전히, 견우라는 두 글자만 떠올려도 두근거리는 심장에 제 옷을 움켜쥐었다. 짝사랑은 생각보다 더 힘든 거네요. 중얼거린 설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건 제시카였다. 설아…, 내가 좀 더 열심히 도와줄게. 그러니까… 설은 제시카의 말에 고개를 저어 끊어내었다.

 

 

 

 

“ 괜찮아요, 저. 포기한 건 아니에요. ”

 

 

 

 

 

*

 

 

 

 

“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정리가 필요하겠죠. ”

 

 

 

설은 벤치에 앉아 쥐고 있던 견우의 사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니가 몰래 전해준 사진은 언제나 설의 작은 가방에 들어있던 사진이었다. 견우가 베이에 집중할 때의 모습은 다른 순간들보다 눈이 부셔 설은 눈 깜박하면 사라지는 빛을 담지 못한 걸 베이 시합 때마다 후회했었다. 그렇다고 저 사진 좀 찍을게요! 할 수도 없는 건데, -사실 그보다는 베이 시합에 집중한 견우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한 쪽에 가까울 것이다.- 지니는 설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뜸 견우의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을 받은 설은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집중한 얼굴도 사랑스러운데 그보다 더 흥분되는 건 평소보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보인다는 점이었다. 심장이 떨려서 견우님을 가까이 보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니까요, 하고 말한 설을 지니는 질색했으나 그녀는 꽤 진지한 편이었다. 정말로, 설은 견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선을 내린 적이 많았다. 피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사람 마음이란 뜻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 사진은 움직이는 견우가 아니었으니, 설은 몇 번이고 그의 사진을 보며 만족스런 얼굴을 지었다. 그 후로 아예 부적처럼 들고 다니는 사진은 베이조정을 할 때도, 자신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에도 바라보며 지금 자신이 서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매개체였다. 존경이고, 동경이며, 사랑이었다. 그의 이름이, 모습이, 제게 숨이었고, 길이었고, 빛이니까.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설에게 견우를 포기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이나 그의 곁에 머무는 정도로 사랑 받을 수 없을 듯 했다. 언제까지고 짝사랑이 이어져야 하는 걸까? 자신은 견우에게 어떤 사람인 걸까. 설은 시선을 여전히 사진에 두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 설? ”

“ 으아아악! ”

 

 

갑작스런 견우의 등장에 설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쥐고 있던 사진을 손으로 구겼다. 그 다음으로 이어질 설의 행동은 사진을 펴 원래 상태로 돌리기 위한 노력이겠지만, 설이 가지고 있던 사진은 견우가 모르고 있는 사진인데다가 그의 등장에 놀라 평소처럼 무슨 일인지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겹쳐 오히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견우라면, 자신이 들고 있던 사진에 관심이 없겠지. 없겠지…? 다행스럽게도 설이 걱정을 하는 동안 먼저 입을 연 건 견우였다.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지니가 알려줬어. 생각해보니 평소라면 견우는 연습장에서, 설은 베이조정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아무래도 지니의 속셈인 것 같았다. 설도 지니가 불러서 나왔다고 말하자 견우는 예상했다는 듯 한숨 쉬며 설의 옆에 앉았다.

 

 

“ 예상은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내가 착각을 했다고 지니가 말해줬으니까. ”

 

 

내가 그, 인사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아. 견우는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다시 닫는 걸 반복했다. 긴 인생은 아니지만, 제 인생은 베이와 하나 뿐인 친구가 전부였다. 정의를 꺾지 말자는 생각도 베이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지 다른 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을 지경이었다. 당장 자신이 해결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정신수양과 체력훈련, 베이연습에 몰두했던 나날 중에 사랑이라는 두글자가 제 머리에 들어온 적도 없었다. 그러니 제 마음에도 사랑은커녕 좋아한다는 감정마저도 들어온 적 없었는데. 견우는 지니에게서 그게 어떻게 인사야?! 하며 잔소리를 들은 이후 한참동안 그녀의 말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설을 떠올린 순간 느껴지는 두근거림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으니까. 이에 대한 결론은 매우 쉬운 답이었다. 겨우 좋아한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상대방을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견우에게도 설의 존재는 가벼운 존재가 아님을 나타내었다. 문제는 이 감정을 정의 내리는데 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와 낯부끄러운 말을 자신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베이도, 독수리도 아닌 존재를 좋아한다… 견우는 제 입에서 좋아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설은 꽤 대단한 사람이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갖고도 언제나 자신에게 고백을 한 것일테니까. 견우는 설을 옆에 두고 말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을 옆에 두고도 제 생각에 빠져 상대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 둘이 비슷한 듯 싶었다. 견우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을 한 건 설이었다. 설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지금처럼 마주하는 것도 부담스러울텐데. 오히려 먼저 찾아와 오해를 풀 생각이라니…

 

 

“ 너무해요… ”

“ 뭐? ”

“ 이제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서 견우님을 포기해야겠다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견우님을 떠올릴 수록 좋아할 만한 이유 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설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이 선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좋아하게 될 이유를 더 만들어주면 어쩌자는 거야! 안 그래도 저는 견우님 밖에 모른다고요! 인사처럼 해왔던 고백에 도망가지 않았구나. 한편으로 제 진심이 닿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날들이었다. 듣고 넘겨도 괜찮다며 위로했던 건 혹시 그가 자신을 거절하기 위해 모르는 척하는 연기였을까봐.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마주한다는 건, 제 진심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구나 싶었다. 설은 마음을 가다듬고 견우를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더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에도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오해였다면, 이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신가요? 이제 좋아한다는 말은 부족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닿아 말해야만 한다. 내 맘을 알아주도록, 길었던 짝사랑을 끝낼 수 있도록.

 

 

 

“ 사랑해요, 견우님. ”

 

 

저, 견우님만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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