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도, 날 봤지?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방금 전까지 어디 있었더라? 의문이 떠올랐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떴더니 아무도 없는 길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분명, 접경도시에 있었을 텐데. 이런 곳은 없었을 텐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있는 것은 없었다. 밟고 선 도로. 길 주위로 듬성듬성 난 풀. 머리 위에 펼쳐진 광활한 하늘. 별조차 뜨지 않은 칠흑의 밤. 혼자 남겨진 암흑.
지휘사, 세실리아는 그대로 몇 십분을 보냈다.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은커녕 어떠한 생물체도 지나가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아예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풀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정적. 남은 것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이 길 하나.
별수 없나. 세실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걸음을 옮기려 발을 뗐다.
“어…….”
한순간,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이유를 판단할 새도 없이 눈앞이 새까맣게 물든다.
아, 그런데.
방금, 무슨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
눈을 뜨면, 창문 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이 비쳤다.
몇 시간째 여기 앉아있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언가 끊어진 채로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다.
하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달도, 별도, 구름조차 없는 광활한 어둠만이 자리하는 공허. 세계 자체가 멈춰버린 기분이 든다. 그렇게 오래 달렸는데.
밤을 타고 온갖 생각이 차오른다. 처음에는 정말 이럴 생각은 없었다. 세계 따위 구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 애초에 여기까지 견뎌올 생각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듯이 살고, 흘러가듯이 알아서 끝났으면 되는 일인데. 지휘사 시험을 왜 치기로 했을까. 기억의 공백은 상상 이상으로 큰 문제를 낳았다.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없었다. 이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갔는지, 그리고, 왜 이 길을 택했는지까지. 중앙청 침대 위에서 처음 눈을 뜬 순간 이전의 모든 기억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이름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사항뿐이었다. 지금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그 이후에 쌓아가기 시작한 기억들뿐. 그중에서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 기가 찬 듯 세실이 숨을 뱉었다. 이제는 나머지 기억도 사라져 버린 건가. 헛웃음이 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없는 사람이 그 이후의 기억까지 잃었다는 소리인가. 눈을 뜬 이후부터의 삶, 그 가운데에 있는 무언가. 그것이 한순간에 비어 버렸다. 뭘까. 무엇일까. 사람이었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상념은 밤을 지배한다. 홀로 남겨진 방 안에 온갖 물음이 내린다. 끝없는 물음의 연쇄가 목을 조를 듯 차오른다. 비어버린 곳을 채우기 위한 문답. 답 없는 질문들의 연속.
머리가 어지럽다. 시야가 다시금 흔들린다. 다시, 눈앞이 흐려질 무렵.
……아니, ‘다시’?
“……셀리아!”
유리창이 깨지고, 방 안으로 빛이 들이친다.
어둡기만 한 하늘이 밝는다. 밤은 끝나고, 새벽을 향하는 듯 별이 떠오른다.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사람을 본다.
별빛을 감은 사람을.
그 눈에 새겨진 푸른 하늘을.
나는 분명…….
***
“……셀리아, 정신이 들어?”
“……응?”
눈을 뜨면, 걱정이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이리저리 뻗친 갈색 머리에, 안경 너머로 비치는 투명하리만큼 맑은 하늘빛의 눈동자. 잊어버린 과거, 그 이후의 모든 기억을 함께한 사람. 이제는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 버린 사람.
모든 애매함을 선명함으로 바꾸고, 꺼져가는 불씨마저 되살리는 이.
“세츠.”
잃어버린 길을 이끄는, 밤의 길잡이별.
“나, 꿈에서 당신을 봤어.”
새벽의 길잡이별은 웃었다.
그리고 말이야, 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