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을 닮은 당신.
여름을 닮은 나.
그가 태양신의 아들이었기에 여름을 닮은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역시 결론은 아니오, 이었다. 성격도, 웃는 얼굴도 보면 볼수록 여름을 닮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런 그에게 언제부터 마음을 열게 되었을까. 되짚어 보면 칼데아에서 인리정초를 바로잡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서 원래라면 여름쯤 되는 계절이었던 것 같다.
기억 속에서도 달리 계절과는 상관없는 곳이었지만, 확신할 수 없는 미묘한 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지는 않았지만……. 서로 캐묻지 않는 것은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아무도 규칙이라고 내뱉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필시 자신이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에게 거리를 두려고 하며 피했기 때문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쌓인 서류를 정리해놓고 몸을 일으켰다. 당장 급한 것들과 일정들을 조정해 짜 맞추니 겨우 난 휴식 시간이었다. 그 전부터 쉬는 것이 좋겠다고 사람 좋은 상사가 권유했지만, 당장 가장 무리하고 있는 그가 말하는 것이 달리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었지만, 구태여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자신처럼 말할 수 없는 이유 정도는 분명 있으리란 믿음이 있어서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앞이 핑 돌았다. 아…. 대충 잠을 얼마나 안 잤더라, 인간의 한계치를 언제나 시험해보는 중이라는 것 정도만 기억났다. 굳이 세어보는 것은 의미가 없고, 말해봤자 랜서에게 잔소리만 들을 이야기니까. 그 와중에도 엎어져서 서류가 흩어질 걸 생각하면 어쩐지 끔찍해져서, 예상에도 없던 일이 일어나는 게 썩 기쁘진 않았다.
“아가씨가 로봇도 아니고……. 괜찮아?”
넘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단단히 받친 손, 익숙한 목소리. 이런 때에는 그에게 화낼 것도 달리 없었다. 인기척은 있는데도 문을 두드렸을 때 별다른 말이 없다면 높은 확률로 지금처럼 수면 부족으로 책상이나 바닥에 엎어져서 자고 있을 테니 깨워달라는 부탁을 자신이 했었으니까.
“반성하고 있어요…. 부탁한 건 다 됐죠?”
“다 됐으니까 가져왔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 못해서 나한테 한 거잖아?”
언제나 들려오는 것은 여름을 닮은 청명한 그의 목소리. 이 짧은 순간이 영원이 되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결국, 그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 인리를 수복하고 그와 이별을 할, 그를 닮은 쨍쨍한 하늘 아래, 여름이 끝나는 날 마음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