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명은 처음부터 그랬으니까요. …다소, 시간이 오래 걸렸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았지만요. 엘의 여인을 찾아 엘을 복구시키는 순간 나는 그 엘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넣을 거예요. 나라는 존재는 소실되고, 그들과 네 기억에도 남지 않겠죠. 너 역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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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줄곧 고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관계였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여신의 가호 아래에 사명을 이루는 자와 그 사명을 돕는 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서로의 필요에 생긴 이해관계, 라고 말하는 게 옳았지만…. 그가 엘 수색대와 유대로 감정을 피워냈을 때, 우리의 관계도 어떤 의미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깨닫고 보니 생각보다도 깊게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하멜에서 개입 종료 이후 힘이 돌아오지 않아 그가 다시 개입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자신 외의 다른 동료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대로 소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느낀 그 불안감과 걱정이 그저 여신님께서 내려준 사명으로 얽힌 관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떠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때 붉은 머리의 소년이 그를 떠올려주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그는 지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개입이 종료된 상황에서도 그가 그들과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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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을 품었기 때문에 그들과의 여정이 막바지인 지금 그의 말에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사라져도 괜찮다고? 그게 운명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어째서 개입을 종료할 때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그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할 때. 어째서 그렇게 개입을 하려고 했었나요? 그저, 여신이 내려준 사명의 완수를 위해? 개입하지 못한다면 해결할 수 없어서? 그의 진심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 말을 하면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테니까.
화가 났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분해서? 억울해서? ……그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명을 이루면 소멸해야 한다는 부조리함을 애써 받아들이려고 해서? 말로 내뱉지 못한 감정이 자꾸만 눈물로 쏟아져서, 자신의 눈물에 당황한 채로 보는 그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적어도, 우리가 서로의 이해자라 한다면……. 제가 신관님에게 알려준 감정들과 신관님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말한다고 해도, 저는 신관님의 말과 진심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라져도 괜찮다던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게 옳은 일이라던가. 제 기억에서도 신관님과 함께했던 것들이 사라지니 괜찮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말아요….”
당신의 진심이 듣고 싶은 내게,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세요.